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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씨개종시조(羅氏開宗始祖) 축융과 황제계보(黃帝系譜)

祝融公 考辨

罗氏世系皆以祝融为颛顼之后祝融是也。历代名公巨手,为序为志,各有著作,亦皆以祝融为罗氏始祖。其中引用国史典故,如颖公序曰:“罗氏出于重黎,为黄帝司徒,曰祝融以火施化,号曰赤帝听弇州之鸿(鸣)鸟,以作乐歌。生都于鄫,终葬衡山之阳。”。後之作序者,大都本此,亦未能深究。余尝考旧史及通鉴诸书,有祝融氏者,本神农之後。神农纳奔水之女,曰听詙,生临魁,临魁生帝承,帝承生帝明,帝明生帝宜,帝宜生帝来,帝来生帝里,帝里生节茎,节茎生戏,戏生器,器生祝融为黄帝司徒。据此,则祝融本在颛顼之前,且出于神农氏,其孙勾龙与颛顼同时,世系详明,昭然可考。

나씨의 혈족은 전욱과 축융의 후손들이다. 역대 유명한 인사나 대신들은 서문을 지지로 삼아, 각자 저서가 있는데, 여기서  모두가 축융을 나씨의 시조로 보고있다. 그 중에서 국사(國史)의 전고(典故) 를 인용한 여영공의 글에서 "나씨는 중려에서 나와 황제의 사도가 되었다. 불을 관리하여 축융이라 하였으며, 엄주(弇州)의 기러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적제라는 호를 얻었다. 악가를 지었다.  수도 현에서 태어나 형산의 양지에 묻혔다."라고 되어 있다.  후에 지은 서문은 대부분 이것 때문에 깊이 연구하지 못했다.

黄帝在位百年黄帝之下有少昊氏在位八十四年少昊氏之下始为颛顼既曰颛顼之子又曰为黄帝司徒不知黄帝至颛顼百有余岁即时会(?)亦且不合岂不自相矛盾乎及查颛顼本纪》,帝娶邹屠氏之女生骆明苍舒隤獃梼戭大临庞降庭坚仲容叔达九人骆明之後至禹为夏后氏苍舒与叔达等世号为高阳氏之八恺又娶胜溃氏之女生卷章穷蝉梼杌三人穷蝉之後至舜为有虞氏梼杌不才为舜投之四裔卷章之妻曰女娇生子二长曰黎次曰回黎代为祝融我祖所称祝融者即黎也其後裔至周初受封于罗即今湖广房州也子孙因以为氏按祝融本火官之名器所生之祝融始党火正故号祝融氏吾祖黎本颛顼之孙颛顼命司火官火正)。秦嘉谟补辑世本"罗氏本自颛顼未胤受封于罗国为楚所灭子孙以为氏"唐林宝元和姓纂"祝融之后妘姓国初封宜城徙枝江周末居长沙"又云"罗氏有齐郡襄阳河东三族"宋代广韵"本自颛顼末胤受封于罗今房州也为楚所灭子孙以为氏"明凌迪知万姓统谱"豫章徵音祝融之后妘姓受封于罗国子孙以国为氏又望出长沙"名贤氏族言行类稿"祝融因作火正官后世称火神周末祝融后代被封于罗建立罗国在宜城位于湖北境内后迁枝江被楚国所併原罗国王族子孙又移居湖南长沙遂以原国名命姓乃成罗氏"通志氏族略以国为氏"周代有罗国初封宜城徙枝江春秋时被楚国所灭周末居长沙国人以原国名[]为氏"姓氏急就篇则称"罗氏颛顼后妘姓国"说文通训定声妘姓源自祝融氏一古姓国也鄅 等姓都是古时的妘姓国世本帝系篇"黄帝生昌意昌意生高阳是为帝颛顼。……颛顼娶于滕坟女谓之女禄产老童老童娶于根水女谓之骄福生重黎及吴回"史记"罗氏乃祝融之后本妘姓都於郐"毛诗谱"会人[祝融八姓]之 妘姓也是为郐国"百家姓考》:"罗氏源自火神祝融氏祝融氏名黎吴回是颛顼帝的曾孙祝融的后裔到了周末封于宜城称为罗国春秋时为楚所灭其子孙南移枝江周末徙长沙"

 

综上所考古文献中记载的祝融有两个一前一后一神一职前者称前祝融为炎帝神农氏的后裔被尊为赤帝。《山海经炎帝之妻赤水之子听沃生炎居炎居生节并节并生戏器戏器生祝融赤帝亦为祝融),与伏羲氏神农氏同为三皇(《 史记》), 与赫胥氏尊卢氏同为三王(《 六韬》)。《礼记月令孟夏之月其帝炎帝其神祝融另一祝融在后称后祝融乃颛顼之孫老童之子重黎和吴回二人皆为火正之官其职名曰祝融。《 左传火正曰祝融火正就是掌管火之官传说中之火神祝融。《路史祝融氏号也祝融氏职也本非人名黎为祝融回为祝融姓氏急就篇又云罗为颛顼后是则老童之子祝融官并非古帝祝融也由此可知这两个祝融当以分别不可混淆按文化认同罗氏始祖应为后祝融黄帝之嫡裔颛顼之孙祝融官重黎吴回是也

帝(황제)

黃帝 姓公孫, 號有熊氏, 少典之子. 母符寶氏於祁野感電光繞斗, 懷孕二十四月, 生帝於軒轅之壽坵, 因名軒轅. 卽今河南新鄭縣. 生出日角龍顔, 有景云之瑞. 長居姬水, 改姓姬. 生而神靈, 弱而能言, 幼而徇齊, 長而敦敏, 成而聰明. 以土德王, 卽神農之位而有天下, 土色黃, 故曰黃帝. 初都有熊國, 因號有熊氏. 遷都濁鹿, 卽彭城是也. 在位百年, 壽一百一十七歲. 崩荊山之陽, 葬於橋山.

元妃西陵氏女, 名嫘祖,生三子 玄嚣, 昌意, 龍苗, 次妃方累氏女, 生子四 靑陽, 節, 休, 淸, 三妃彤渔氏女,生子三 揮, 夷鼓, 彭, 四妃嫫母氏女,生子二 蒼林, 禺陽, 衆妾共生十四子 祁, 己, 騰, 箴, 任, 荀, 嬉, 佶, 儇, 依, 夷, 姬, 大酉, 細酉.

황제는 성이 공손이며 유웅씨로 소전의 아들이다. 어머니 부보씨는 요두 빛에 감전되어 임신 24개월만에 지금의 하남성 신정현에 있는 수구 헌원에서 황제를 낳았다. 그래서 이름이 헌원이다.  각용안과 경운지서를 갖고 태어났다. 희수에서 오래 살아서 성을 희(姬)로 고쳤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령하고, 약하지만 말재주가 있고,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자라서 부지런하고 민첩했으며, 어른이 되어서 총명하였다. 토덕왕으로 천하에 신농의 위치에 있어 흙의 색에 따라 황제라 불리웠다. 처음 정한 도읍에 웅국(熊國)이 있어 그로 인하여 유웅씨(有熊氏)라 불리웠다. 그 후 탁록, 즉 팽성으로 천도하였다. 100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며, 117세를 수하셨다. 형산의 남쪽에서 돌아 가셨으며,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다.

첫째부인 누조라는 서능씨의 여식에서 아들 셋, 현기, 창의, 용묘를 낳았으며, 둘째부인 방누씨의 여식에서  아들 넷, 청양, 절, 휴, 청을 낳았으며, 세째부인  동어씨의 여식에서 아들 셋, 휘, 이고, 팽을 낳았으며, 넷째부인 모모씨의 여식에서 아들 둘, 창림과 우양을 낳았다. 그외 여러 첩에서 아들 열넷, 기(祁), 기(己), 등, 성, 임, 순, 희, 길, 현, 의, 이, 대유, 세유를 낳았다.

昌意(창의)

昌意黃帝次子。降居若水爲諸侯 若水卽江水,古之江國也,皆在四川之蜀地。

娶蜀山氏之女,名昌樸,又曰女樞,生子一 乾荒。

창의는 황제의 차자이다. 약수에서 거주하여 제후가 되었다. 약수는 강수(江水)로 고대의 강국이다. 모두 사천의 촉땅이다.

창박, 혹은 여추(女樞)라는 촉산씨 여식에게 장가들어  아들 하나, 건황을 낳았다.

乾荒(건황)

乾荒 昌意之子。

娶河女淖子,又名女樞,于蜀四川之若水,感瑤光如蜺貫月正白之祥,在幽房之宫,生子一颛頊。

건황은 창의의 아들이다.

여추라는 촉나라 사천(四川)의 약수에 하녀탁자에게 장가들어 ???? 아들 하나, 전욱을 낳았다.

颛顼(전욱)

颛顼高陽氏,乾荒之子。姓姬,生有圣德,首戴干戈,能专正天人之道,故號颛顼。山東濮州舊有陵碑尙存,言颛顼十五岁佐少昊爲政,二十歲師事綠圖。少昊氏崩,遂卽位。自穷桑遷都于帝坵,卽河南大明府清縣東北七十里。以水德王,而有天下。复國都高陽,称高陽氏,卽開封府杞縣。在位七十八年,壽九十八崩。葬東郡濮陽頓坵,卽今東昌府城門外广陽里中。

邹屠氏,生子 駱明、蒼舒、責阝敼、祷戭、大臨、龐降、庭堅、仲容、叔达. 又配滕隍氏,生子称、孺帝. 庶子二 窮蟬、禱杌。

전욱고양씨는 건황의 아들이다. 희성으로  천인의 도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성덕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이 전욱(顓頊)이며, 산동 복주에 능비가 남아 있다.  전욱이 15세에 소호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되었으며, 20세에 녹도의 사사가 되었다. 소호씨가 죽자  자리를 물려 받았다. ??? 78년간 재위하였고 98세에 돌아가시어 동군 복양 돈구, 지금의 동창부 성문 밖 광장리 가운데에 장사지냈다. 

추도씨에게 장가들어 아들 낙명, 창서, ?희, 도인, 대임, 방강, 정견, 중용, 숙체를 두었으며, 등황씨에게서 아들 칭과 유제를 두었고, 서자로 궁선과 서궤를 두었다.

称(칭)

称公 亦作伯称,颛顼之子.

生子一卷章

칭공은 또한 백칭으로 불리우며, 전욱의 아들이다.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권장이다.

卷章(권장)

卷章 字老童,称公之子。

娶根水氏女,謂之驕福,生子二重黎(祝融)、吴回(祝融)

권장은 자가 노동이며, 칭공의 아들이다.

교복(驕福)이라 불리는 근수씨 여식에게 장가들어 축융중려와 축융오회를 낳았다.